부활주일 2025. 4.20 누가복음 24:13-27 “엠마오 마을로 가던 두 제자” (박성일 목사) 1.어려운 일을 겪으면 사람의 생각이 좁아진다. 일단 시야가 상당히 좁아진다. /실제로 전투를 앞 둔 병사들은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에, 이것이 배를 압박해서 배변을 촉진하고, 시야가 평상시 보다 상당히 좁아진다. 작은 행동 행동 하나에 굉장한 관찰이 필요하기에, 때로는 날아가는 총알이 보일 정도로 몸의 모든 집중력이 작은 포커스에 쏠리게 된다. /2.몇 년 전부터 한국에서 화재가 발생했을 경우에, 드론을 위에 띄어 놓고 전체적인 상황을 보면서 불이 어디로 번져 나가는지를 읽고서는, 필요한 지점에 효과적으로 소방수들이 대처하게 한다고 한다. 3.그런데 우리 삶의 경우에 일단 눈 앞에 어려운 일이 닥치면 그렇게 멀리서 볼 여유도 없고, 혹시 우리에게 조언해 준다고 옆에 있는 사람의 소리도, 크게 마음에 와 닿지 않는다. 오히려 예민한 가운데 상처받기 일 수이다. /4.욥기를 보면 욥이 정말 고통 속에 있을 때, 세 친구들이 위로해 준다고 멀리서 달려왔지만, 결국 그들과 험악한 말싸움만 하지 않는가? 자기 스스로는 상당히 판단력이 떨어지고, 옆에서 조언해 주는 사람들은 오히려 마음에 불안감만 조성한다. 5.어떤 아주머니의 남편이 아파서 큰 수술을 해야 하는데, 병원에 방문한 옆집 아줌마가, 이 병원은 뭐가 어쩌고 저쩌고, 왜 여기서 수술을 하냐, **병원으로 가야 한다고 한다. 30분 있으면 수술실로 가야 하는데, 지금 와서 이 말이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한국에 있었을 때, 장례식을 많이 갔는데, 지방마다 매장하는 문화가 다르다. 어디는 석관을, 어디는 관에서 시신을 꺼내어 묻고(탈관) 관을 그 자리에서 불태운다. 6.근래에는 화장이 많아져서, 화장한 뒤 매장을 한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사실 유족들은 정신이 없다. 가족이 죽었다는 슬픔의 충격을 받고서, 이제는 밀려오는 손님을 며칠 동안 밤새며 대접하다 보면, 이것 저것 냉정하게 따질 마음의 여유가 없는 것이다. /7.아무튼, 시신을 탈관해서 땅에 넣었는데, 어떤 아저씨가 딱 보아도 약간 술에 취한 것 같은데----, 땅을 다 덮으려는 순간에, 시신과 백반(boric acid)을 같이 넣었어야지, 안 넣으면 동물이 다 헤쳐 먹는다고 다 들리게 궁시렁 거리는 것이었다. /속으로는, 그렇게 잘 알면 땅을 덮기 전에 이야기 하던지…지금 다 덮었는데 그럼 다시 무덤을 헤치란 말인가? 8.가족들은 이 소리를 듣고 얼마나 마음이 불편하였겠는가? 충격을 받은 사람은 마음의 기둥이 흔들리기에, 연이은 작은 충격에도 붕괴 직전까지 가는 것이다. /우리는 어려움을 당하면 우리가 평상시에 의지한다고 생각하던 것들이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9.그리고 이렇게 마음의 눈이 좁아진 사람에게는 오히려 미혹하는 사람들이 가까이 다가간다. 상대편의 경계가 느슨해 졌기 때문에 오히려 접근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미혹하는 자는 항상 약한 자를 노리고 있다. 전에 이단에 빠졌던 사람에게 왜 이단에 들어갔냐고 물었더니, 거기에 있는 사람들은 거의 형편이 비슷하다는 것이다. 10.어려움 속에 시야는 좁아지고, 자신의 이런 마음을 잘 이해하고 위로를 주니, 세상에 이런 좋은 곳이 있을까 해서 마음을 준다는 것이다. 마음에 어려움을 겪으면 누구라도 시야가 좁아지고 눈에 들어오는 것도 제대로 인식이 안 된다./ 여러분도 상당히 화가 나거나 절망했을 때, 운전을 해서 다른 곳으로 갔는데 자기가 어떻게 운전해서 왔는지 기억도 안 나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11.그때는 나의 지각과 판단으로 운전한 것이 아니라 내가 해오던 습관이 운전을 한 것이다. 나는 전에 아파트에 살다가 이사를 한 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몇 번을 전에 살던 아파트 방향으로 운전대를 돌린 적이 있다. 습관대로 가게 된 것이다. 실제로 상당히 마음에 어려움을 겪은 사람이 6시간 내에 운전하면 교통사고를 겪을 확률이 높다고 한다. 12.제대로 판단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우리는 일단 절망이 오면 눈이 가려지고, 이러한 장애 속에, 더 큰 사고를 치거나 극단적인 생각을 실행에 옮기기도 한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시니 제자들도 마음에 충격을 받았다. 새로운 세상을 만드실 분인 줄 알고, 따라갔는데, 반대편의 공격에 걸려서 죽임을 당하시고, 그것으로도 너무나 충격인데, 시체가 없어졌다는 소문이 있었던 것이다. /13.예수님의 제자 중의 두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25리쯤 떨어진 엠마오로 가고 있었는데, 이들은 혼란스러웠다. 자신들의 리더가 죽임을 당하시고, 또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간 여자들이 한 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제자들은 12제자는 아니고, 그 외의 제자 중에 있던 사람들이었는데, 예수님의 무리 중에서 권위를 인정받았던 12제자 중 한 사람이 배신을 하여서 예수님을 팔았다는 것이 이들을 더욱 충격에 빠뜨렸을 것이다. /14.전에 오하이오에 있었을 때, 청년들과 성경공부를 하는데 나이가 30대 중반인 한 청년이, 교회에서 열심히 일하던 분들이 정작 교회를 쪼개고 힘들게 한다고 푸념 섞인 소리를 했던 적이 있다. 예수님과 같이 3년 동안 밥 먹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병자를 고치고 복음을 전파하였던 사람이 예수를 팔아 버린 것이다. 15.그래서 목회자들도 이런 경우를 겪고 마음이 상할 때마다 서로에게 위로하는 말이 “예수님에게도 가룟 유다가 있었다”는 것이다. /외부의 공격은 내부적으로 단결하게 하지만, 내부에 중직을 맡았던 자의 변심은 커다란 흔들림 이었다. /이렇게 생각지도 못한 여러가지 일로 충격을 받은 두 제자들이 지금까지의 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서로 물으며 가고 있었는데, 누군가가 끼어 들었다. /16.두 제자와 같이 걷고 있는 분은 부활하신 예수님이셨는데, 일단 예수님은 죽었다는 생각에 예수님을 보고서도 알아보지 못했다. 16절을 보니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이라고 한다. /우리 마음 속에 단정짓거나, 그것으로 인해서 어떤 이미지를 가지는 것은 우리의 마음을 지배한다. 17.예를 들어서 어떤 동물은 무섭다든지, 어디 지역 사람은 나쁘다든지, “말 잘하는 남자는 바람둥이야,” “어떤 도구는 위험해” 같은 것들이 있다….실제로 실험이 있었다. 실험자가 뱀 모형을 하이웨이에 노면에 놓았다. 뱀은 나쁜 동물이라는 이미지가 있기에 사람들은 일부러 뱀 모형을 밟고 갔다. 심지어 한번 밟고 갔다가 뒤로 와서 한번 더 밀고간 사람도 있었고, 경찰은 차를 세우고 총으로 뱀 모형을 쏘았다. /18.실험자가 이번에는 거북이 모형을 놓았다. 그러자 사람들은 차를 천천히 세우고 흐뭇한 표정으로 비켜간 것이다. 실제로 뱀이 그들에게 해를 가한 것도 없고, 거북이가 이득을 준 것도 없지만, 머리 속에 새겨진 이미지가 그렇게 행동하게 한 것이다. 19.그러니 이 두 제자의 머리 속에는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예수님의 이미지가 강하게 박혀 있어서, 예수님을 보고서도 알아보지 못했던 것이다. 예수님은 이들에게 길을 가면서 서로 주고 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고 묻는다. 그러자 “글로바”라고 하는 제자가 당신은 예루살렘에 있었으면서도 요즘 거기서 된 일을 혼자만 알지 못하냐고 한다. 20.그러자 예수님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으신다. 그래서 제자들은 예수님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자신들은 예수님을 이스라엘을 건져낼 자로 기대했다고 한다. 그러니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셨을 때, 이들의 기대 또한 무너져 버린 것이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들어가셨을 때, 사람들은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라고 불렀다. 21.다윗의 자손은 이제 로마의 압제에서 자신들을 구원해 줄 메시야를 지칭하는 말이다. 이렇게 사람들은 예수님을 새로운 왕으로 생각했다. 요한복음 6:15절을 보면,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킨 예수님을 사람들은 임금으로 삼으려고 하였다. 그러니 예수님을 보면서 사람들이 자기의 기대치를 가지고 대했던 것이다. /22.우리가 지도자를 세울 때, 많은 경우 자신의 욕망을 채워줄 사람을 찾는다. 그래서 자기가 지지하던 사람이 떨어지면, 마치 자기가 같은 일을 당한 것같이 동질감을 느끼며 분노하고 좌절한다. /1차 세계대전의 패전이후 급격한 몰락을 겪은 독일 국민은 자신들의 자존심을 세워주고, 자신들의 욕구를 채워줄 사람이 필요했다. 그래서 그들은 합법적으로 히틀러를 선출하였고, 그에게 힘을 심어주었다. 23.나중에 전범으로 잡힌 사람들은 다 위에서 시키는 것을 했을 뿐이라고 변명했지만, 실제로 이들은 히틀러를 통하여 자신들의 욕망을 이루고자 했던 것이다. 예수님을 대하는 사람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킨 예수님이 사람들의 직접적인 요구에는 응하지 아니하시고, 자신이 생명의 떡이라고 하시니, 자신들의 기대치가 엇나감으로 인해 분노한 많은 제자들이 예수님을 떠났고, 가롯 유다의 마음에 사탄이 있게 된다. 24.우리가 교회에 와서 위로를 얻고 힘을 얻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은, 교회의 주체는 주님이시지 우리의 감정이 아니라는 것이다. /주님을 왕으로 인정하기 보다는, 자신이 주권을 잡기 원하기 때문에 항상 모든 문제가 생겨나게 된다. /자기가 상상한 기대치를 채우지 못해서 주님을 떠났다고 한다면, 그것을 신앙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25.그러나..그런 일은 실제로 벌어진다. 그러한 시험이 많은 사람을 노리게 된다. 중요한 것은 혹시 자신을 정당화 시키는 소리가 있다 할지라도, 그것이 주님께로부터 오는 소리가 아니라면, 혹시 섭섭함이 있다 할지라도 분별해 낼 수 있는 능력인 것이다. 이렇게 자신들의 기대치도 무너지고 여러가지 소식으로 충격을 받아서 마음이 둔해진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라고 한다. 26.그렇다. 이러한 상태에서 자기 혼자서 계속 머리 돌리며 이런저런 생각하는 상태에 있는 것이 우리의 미련함이다. /26절에 보면, 예수님은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고 하신다. 예수님은 성경을 통하여 쭉 설명해 주시는데, 우리는 순간 고난이 오면 모든 것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고, 도망가거나 엉뚱한 곳에서 살길을 찾으려 한다. 27.그러한 약함이 그 사람의 신앙의 모든 수고를 사라지게 만든다. 항상 문제를 만드는 사람은 수고는 하였지만 약한 사람이다. /많은 경우에, 훌륭한 설교자나 어려움을 뚫고 나온 사람의 간증을 인터넷으로 들으면, 그 사람의 신앙이 자기 것인 줄 아는 사람들이 있다. 28.그러한 깊이 있고 강한 신앙이 자긴 것인 양 착각하는 것이다. 이것은 친구가 좋은 차를 산 다음에 자기에게 보여주었는데, 한번 시트에 앉아 보고서 자기 차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깊은 신앙은 어려움을 통한 비싼 값을 지불하고 주어지는 것이다. 29.예수님은 십자가의 희생을 통해서 사망의 길로 가는 우리에게 구원을 얻을 기회를 주셨는데, 이제 강하고 깊은 믿음 속에서 끝까지 그 좁은 길을 가는 사람도 있고, 스스로의 약함이나 미련함 때문에 떨어져 나가는 사람도 부지기수이다. /예수님은 성경을 통하여, 자기 생각으로 판단하고, 자기 생각으로 마음이 어두워진 제자들의 미련함과 믿음 없음을 깨닫게 하셨다. 30. 32절에 보니 예수님이 자신들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 이들의 마음이 뜨거워졌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저녁식사를 같이 하자는 두 사람의 강권에 같이 식사하러 가셨다. 그리고 이제 음식을 먹은 제자들은 눈이 밝아져서 예수님을 알아보게 된다. 31.육적으로도 공급을 받고, 영적으로도 공급을 받으니, 그들의 어두워진 눈이 밝아진 것이다. 나폴레옹의 말처럼 잘 먹어야 잘 싸운다. 우리가 말씀을 가까이 하는 이유는 단지 지식을 늘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방어전을 항상 잘 치르게 하기 위해서이다. 32.누군가를 공격하는 것은 무척 쉽다. 상대편이 약한 때를 노린다. 그때 공격하면 된다. 하지만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항상 경비병이 많이 서있어야 한다. 그러니 방어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에너지가 있어야만 한다. 우리도 우리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는 꾸준한 공급과 힘이 있어야만 제대로 눈을 뜨고 스스로를 지켜낼 수가 있다. /33.이렇게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로 갈 때에는 마음도 어둡고 눈도 어두워졌던 제자들은 부활의 주님을 통해서 믿음의 눈까지 뜨게 되고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부활의 증인이 된다. /믿음은 마치 등불과 같아서 우리의 마음이 어두워져도 우리를 깨어 있게 한다. 34.반대로, 우리의 믿음이 떨어지는 순간에 우리는 아둔한 자가 되어 어리석은 행동을 하게 된다. 예수님은 자신의 부활을 믿지 못하는 도마에게 증거를 보여 주시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하신다(요20:27). /오늘날도 순간적인 낙망 속에 처하면, 그 마음 속에 믿음이 없는 고로 눈이 어두워져 버리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남을 원망하고 탓해보아야 결국은 자신의 수준을 드러낼 뿐이다. 35.우리가 절망 속에 걷고 있으면 눈이 어두워진다. 그래서 이러한 아둔함을 타고서 악한 것이 우리를 유혹하고, 정말 좋은 것을 좋은 것으로 알지 못하고 그 가치를 못 알아 보며, 마음 속에 감사한 일도 즐거운 것도 사라진다. /우리의 눈을 밝히는 것은 예수를 통한 소망이다. 36.예수님이 고난 당하신 것을 보고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고난을 통해야 영광을 얻는 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이들이 소망을 품게 되었던 것이다. /학생 시절에 중창으로 사랑하던 “엠마 마을로 가는 두 제자”라는 노래가 있다. 37.1) 엠마오 마을로 가는 두 제자
| 절망과 공포에 잠겨 있을 때,
| 엠마오 마을로 가는 두 제자
| 절망과 공포에 잠겨 있을 때
| 주 예수 우리들에게 나타나시사
| 참되신 소망을 보여 주셨네
|
| 38.2) 이 세상 사는 길 엠마오의 길
| 끝없는 슬픔이 앞길을 막으나,
| 이 세상 사는 길 엠마오의 길
| 끝없는 슬픔이 앞길을 막으나
| 주 예수 우리들에게 나타나시사
| 참되신 소망을 보여 주셨네 39.예수님이 정죄 받아서 죽으셨으니, 제자들 또한 자신들에게 불똥이 튈까 봐 두렵기도 하였다. 요한복음 20:19절을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문을 닫았다고 한다. 엠마오로 가던 두 사람도 아마 자신들에게 닥칠 어려움을 피해서 예루살렘을 벗어나 갔을 수도 있을 것이다. 절망도 어려운데 공포마저 함께 한다면 그 눈은 정말 어두워질 것이다. 40.그러나 주님을 통해 소망을 얻은 이들은 위험이 도사리는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자신들의 업적이 무너지고 짓밟힌 곳으로 돌아간 곳이다. 그리고 부활의 증인이 되었다. /오늘 나온 제자 중 한 사람의 이름만 적혀 있으니 그의 이름은 글로바이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실 때, 옆에 있었던 여자들 이름 중에(요19:25)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가 있었다고 한다. /41.예수님은 안식 후 첫날 찾아온 여자들에게 갈릴리로 가실 것이니, 제자들도 거기로 오라고 하신다(막16:7). 그러나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들은 엉뚱한 곳으로 가고 있었다. 42.예수님은 갈릴리에서 고기 잡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사 밤새도록 고기를 못 잡은 제자들이 고기를 잔뜩 잡게 하시고, 사명을 주신다(요한복음21장). /이 장면은 예수님이 제자를 처음 부르신 장면을 생각나게 하니, 이어서 제자들이 성령과 동행하며 새로운 도약을 하게 하셨다. /43.성도도 삶의 순간순간 절망과 공포 속에 눈이 어두워져서 자기 멋대로 잘못된 방향으로 가기도 한다. 그러나…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소망을 품게 하시고 갈 길을 밝히시는 분이 예수님이시다. 때로는 주님이 우리의 삶의 길을 함께 가고 계신 대도, 우리의 눈이 어두워서 주님을 알아보지 못하기도 한다. /44.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분의 삶의 여정에 주님이 하시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걸을 때, 무겁던 마음이 가벼워지고 절망에 짓눌린 가슴에 뜨거운 열망이 자리를 채울 것이다. 45.주님과 동행하며 소망을 품고, 살아있는 인생을 사시기를 축복한다. 바라옵기는, 우리 삶 속에 동행하시고 같이 걸어가시는 분이시며 우리의 길 자체가 되신 예수님을 알아보고 그 말씀에 인생을 움직일 힘을 항상 얻는 복된 성도가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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