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이 인도하시는 교회"(시편23)
 
작성일 : 25-04-18 12:46
종려주일. 2025. 4.13 마가복음 14:22-31 “스스로를 돌아보는 성도”(박성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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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웹섬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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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려주일 4.13 마가복음 14.22-31 스스로를 돌아보는 성도.docx (25.8K) [21] DATE : 2025-04-18 12:46:05

               종려주일. 2025. 4.13

마가복음 14:22-31 “스스로를 돌아보는 성도”(박성일 목사)

       1.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셨는데, 마가복음을 읽다가 눈에 들어오는 사람은 눈먼 거지였던 “바디매오”이다. 여리고를 통과하셔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예수님, 다시는 오시지 못할 예수님이었는데 바디매오는 그 기회를 잡았다. 그가 나사렛 예수가 지나간다는 말을 듣고서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소리를 질렀더니, 사람들이 그를 꾸짖어 잠잠하라고 한다. 2.그랬더니 그러한 위협 앞에서 기가 죽고 고개를 숙인 것이 아니라 바디매오는 더욱 크게 소리를 질러서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한다. 당시 사람들은 예수님이 놀라운 능력의 소유자라고 생각을 하기는 했지만, 다윗의 자손이라고 부르지는 않았다. 3.이것은 그리스도에 대한 별칭이요, 당시의 사람들은 로마의 식민지 시대를 살아가면서 언젠가 다윗의 자손이 다윗의 때처럼 나라를 회복하고 확장하기를 바라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주저하는 이 호칭에 대해서 거지였던 바디매오가 큰 소리로 외친 것이다. 4.그리고 그는 예수님 앞에 나아가게 되었고, 예수님은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마가복음10:51)고 물으신다. 예수님이 눈먼 사람의 소원을 보면 모르시겠는가? 그러나 주님은 우리가 입을 열어서 자기의 원하는 것을 간구하기 원하신다. 바디매오는 보기를 원한다고 하였고 예수님은 그에게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고 하셨고 바디매오는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랐다고 한다.

5.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려면 확실히 예수님을 “나의 왕”으로 외치며, 예수님을 붙잡아야 한다. 구하는 자가 얻고, 찾는 자가 찾아내는 것이고, 문을 두드리는 자에게 문이 열리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많은 사람들이 지나가시는 예수님을 부르지도 않고 구하지도 않고, 그냥 그렇게 놓쳐 버리는 일들을 본적이 있다. 분명히 신앙적으로 더 성장하고 발전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으로 잡지 못한 채로, 그냥 영적인 소경으로 끝까지 가게 된다면 결국 어떻게 되겠는가? 6.예수님은 예루살렘에 들어가시게 되었는데 자신의 권위와 인기를 드러내기 위한 의도가 없으셨기에 말을 타시 않으시고 겨우 볼품 없는 나귀 새끼를 타고 입성하셨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이미 죽은 자를 살리고, 눈먼 자를 보게 하는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었고, 11:8 이하를 보면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겉옷을  그리고 어떤 이들은 나뭇가지를 길에 펴며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며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송 하리로다.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라고 소리친다. 7.이들은 이제 예수님이 새로운 세상을 열어줄 것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전심으로 열렬히 환영하였던 것이다. 당시에 사람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옷을 여러 벌 가지고 살지 못했다고 한다. 자기의 옷은 이불이고 옷이고 재산이다. 그래서 옷을 담보로 잡는다는 기록이 있는 것이다. 그런 옷을 깔았다는 것은 그만큼 마음이 열렸다는 것이고, 아깝지 않다는 진심의 표현인 것이었다.

8.그런데 우리가 어떤 상황에 대해서 진심을 가지게 되는 경우에도, 전체적인 분위기가 그렇게 가니까 자기도 휩쓸려 가기도 한다. 아무튼 어떤 대가를 받은 것도 아니고, 자기 옷을 바닥에 깔 정도였으면 이들의 당시의 마음은 순전했다. 그런데 우리가 잘 알다시피 이들은 이후에 돌변한다. 9.마가복음 15:6이하를 보면 당시 로마의 총독이었던 빌라도는 예수님과 “바라바”를 백성들 앞에 내어 놓는다. 바라바는 민란을 꾸민 자이고, 민란 중에 살인을 하고 체포된 죄수였다. 로마가 지배지에 대해서 나름대로 관대하게 치리했지만 반란에 대해서는 무자비하게 짓밟았다. 10.그래야 제국의 기강이 섰기 때문이다. 빌라도는 예수님의 적대자들이 예수님을 시기하여 넘긴 것을 알고 있었고, 유월절을 맞아 죄수 중에 하나를 놓아주는 전례가 있어서 예수님과 바라바를 놓고 일종의 선택을 하게 하는데, 당연히 개인적으로 예수님을 풀어주고 바라바를 처벌하고 싶었다. 그런데 바로 얼마 전에 자기 옷을 깔고 종려나무를 흔들었던 사람들이 이제는 예수님의 적대자들의 충동을 받아서 바라바를 놓아달라고 한다. 11.그리고 예수는 십자가에 못 박게 해달라고 한다. 15:14을 보면, “빌라도가 이르되 어찜이냐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하니 더욱 소리 지르되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하는지라”고 한다. 세상을 살다 보면 이렇게 억지로 우기고 떼를 쓰면서 분위기를 몰고가는 일이 나타날 수도 있다. 12.그래서 빌라도는 민란도 우려되고, 또 백성들의 만족을 주기 위해서 바라바는 놓아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었다고 한다. /마태복음 27:20이하를 보면 빌라도는 이러한 무리 앞에서 물을 가져다 손을 씻고 이 사람의 피에 대해서 자기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고 한다. /13.그러자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주 무서운 말을 하는데, 아마도 군중심리 속에 누군가가 충동하는 자가 있었을 것이고 백성들이 여기에 동조한 듯 하다. 25절에 보니 “백성이 다 대답하여 이르되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고 한다. 14.우리는 이후에 역사속에서 얼마나 유대인들이 핍박을 받았는지를 알고 있기에 이것을 연결해서 생각해보면, 생각 없이 뱉은 말이 얼마나 무서운지에 대해서 경계하게 된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우리의 말을 다 듣고 계신다. 15.특히 커다란 무리를 이룬 채로 뱉은 말,은 그 말에 힘도 실리고 대표성을 가지기 때문에 대단히 조심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당을 짓는 것을 죄로 규정하고 있다.

16.로마서 2:6-8을 읽어 보면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진노와 분노로 하시리라”고 한다. 17.사람이 당을 지어서, 즉 무리를 이루고 행동을 하다보면 남들에게 책임이 분배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도 잘 모르게 되고 둔감하게 된다. 그래서 집단으로 저지른 잘못에 대해서 범인을 잡으면 모두가 하나같이 자기는 잘못이 없다고 한다. 그러므로 잘못된 모임에는 힘을 실어주는 자체가 죄인 것을 알고 거리를 두어야 한다. /18.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은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하시면서 식사를 통하여 자신을 기억할 것을 가르치신다. 떡을 떼어서 주시고 이것은 자신의 몸이라고 하시고,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하시고, 24절에 보니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고 하신다. 19.이렇게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을 상징적으로 제자들에게 알리신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감람산으로 이동하였는데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이는 기록된 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들이 흩어지리라 하였음이니라”고 하신다. 20.예수님은 제자들의 수준과 실력을 잘 알고 계셨다. 이미 예수님이 수 차례 수난에 대해서 예고하셨지만, 이들은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도 못했고 자기 욕심에 눈이 가리어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은 28절에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고 하신다. 예수님은 자신이 겪을 죽음의 고통을 아셨지만, 부활의 능력을 통하여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실 것을 믿으셨다. 21.그래서 먼저 갈릴리로 가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이다.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예수님이 믿음에 대해서 강조하는 장면들을 많이 볼 수 있다. 그런데 심지어는 죽음의 고통마저도 뚫고 나와서 부활할 것에 대한 믿음을 예수님은 가지고 계셨다. 22.예수님은 신성(diety)을 가지셨으니 괜찮지 않겠나 하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인간의 몸을 입고 내려오신 예수님은 인간의 고통을 직접 겪으셨다. /그런데 제자들이 다 예수님을 버릴 것이라는 말에 제자들이 발끈한다. 23.자기가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 가진 것도 놓고 온 사람이고, 귀신도 쫓고 능력을 행한 사람인데, 내가 눈 앞에 어려움 생겼다고 도망 갈 정도의 수준의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먼저 베드로가 “다 버릴지라도 나는 그리하지 않겠나이다”고 큰 소리를 친다. 그런데 여기에 대해서 주님이 하신 말씀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이 밤 닭이 두번 울기 전에 네가 세번 나를 부인하리라”는 것이었다. 24.베드로는 이 말을 인정할 수 없었다. 그래서 다시 한번 힘있게 “내가 주와 함께 죽을 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고 하고 모든 제자도 이와 같이 말했다고 한다(31). 베드로도 그렇고 다른 제자들도 그렇고, 이들이 자기를 포장하기 위해서 거짓말을 했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25.우리도 어떤 집회나 행사를 통하여 비장한 결의를 하게 되고, 이제 내가 주님의 진정한 제자가 된 것처럼 생각하기도 한다. 단기선교를 가면 현지 선교사님들이 봉사하시러 온 분들을 사기 진작하기 위함인지 선교사라고 불러준다. 26.나는 겨우 한주간 갔다 와서 자기가 복음을 전했다고 하는 것도 낯부끄러운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놀랍게도 자기가 그런 일을 하는 적합하고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스스로를 대단한 사람으로 포장하기도 한다.

27.그런데 우리가 겸손하게 스스로를 돌이켜 보며 알아야 할 것은 신앙은 순간의 진심만으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신앙은 순간적인 감격이나 비장한 결의를 통해서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돌이켜 보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깨닫고, 그것을 다시 하지 않기 위해서 일상의 삶에서 강렬한 투쟁과 저항을 하면서 얻어지는 것이고 이것을 통하여 신앙인격이 자라는 것이다. 28.그리고 이러한 바탕 위에서 주님과 꾸준하게 교통하고 찬양하는 것으로 신뢰감을 얻게 되는 것이다.  누가복음 3:7이하를 보면 세례요한은 행위로는 악하지만 그래도 세례를 받으러 오겠다는 사람들을 질책하며,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한다. 29.즉 세례를 받고 새로운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면, 단지 이러한 의식을 거치는 것뿐만 아니라 인격도 행동도 변화하는 열매를 맺어야 한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소리 앞에서 주저하기 쉽지만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다고 하며,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9)고 한다. 30.그러면서 세례 요한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서 실제적인 방법을 가르쳐주고, 자기보다 능력 많으신 예수님이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실 것에 대하여 전하며, 예수님이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17)고 한다. 31.누가 나는 쭉정이 신앙이라고 하겠는가? 나는 많은 사람들이 자기 신앙을 과장하고 장식하는 것을 보아왔다. 별것 아닌 것에도 충동 받아서 할말 못할 말 다 하고 믿음 없는 소리 하면서 또 그게 마음에 걸렸는지 자기가 잘한 것만 골라서 굳이 알려준다.

내가 공수부대로 오고나서 훈련을 받는 곳에 있었을 때, 생활이 너무 힘들었다. 그런데 당시 같은 내무반을 쓰던 동기가 있었는데, 대구에서 온 청년이었다. 32.어느 날 너무 힘든데, 수요일 밤 예배에 올 사람은 나와서 신고하라는 것이었다. 교회까지 가자면 또 상당한 거리를 걸어가야 하고, 피 같은 저녁 휴식을 포기해야 했다. 그래서 모른 척했다. 그러자 대구에서 온 그 친구가 너 교회 다닌다면서 왜 안 갔냐고, “나이롱(진짜와 비슷한 가짜를 뜻하는 은어)이구만, 나이롱” 하는 것이었다. 33.그 이후로 그 때 들은 나이롱이라는 말이 양심을 찔렀다. 우리는 스스로를 비단으로 포장해서 말하기 쉽지만, 사실 알고 보면 나이롱 수준인 경우가 허다하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자신은 비단 같은 존재라고 생각하였으나, 눈 앞의 공포와 두려움 속에서 나이롱 수준으로 전락해 버렸다. 34.그들이 주님 앞에서 큰 소리친지 불과 몇시간도 안되어서 수치스러운 상황으로 떨어진 것이다.  큰 소리 쳤을 때, 베드로도 어려움을 의식한 예수님을 위해서 진심으로 하였을 것이고 제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많은 사람들이 알곡과 가라지의 비유를 들으면서 당연히 자기는 알곡이라고 생각한다. 35.그리고 어떤 큰 교회나 선교단체에 소속해 있으면 마치 천국에 가는 티켓이라도 얻은 것처럼 행동하기도 한다. 우리는 어떤 은혜로운 설교를 들었다고, 자기가 곧 그러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착각하면 안된다. 고난 속에서도 믿음을 지킨 사람의 간증을 듣고 감격했다고 자기가 그러한 역량에 이르렀다고 착각해도 안된다. 36.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은 내가 겪는 일이다. 어쩌면 그렇게도 남이 겪은 일은 쉬워 보이고 간단해 보이고, 내가 겪는 일은 너무나도 어렵고 힘들고 외롭고 고통스럽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인생에 대해서 쉽게 판단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자기의 신앙의 상태에 대해서는 겸손하고 냉정하게 돌아보아야 하며, 무엇보다 회개하고 반성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37.주위 사람들을 다 불편하게 하면서도 끝까지 자기 의만 주장하는 사람을 누가 좋아하겠는가? 심지어는 자식들도 그러한 부모 옆에 있지 않는다. 나는 놀랍게도 교회에 큰 잘못을 저지르고서, 50대 초반의 나이에 갑자기 중풍을 맞은 여자 집사님을 방문했는데, 몸이 망가진 상태로도 자기가 잘했다고 주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씁쓸했던 기억이 있다.  38.우리가 스스로를 포장하고 의롭다고 하는 것이 우리를 살리는 것이 아니요, 우리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죄를 사하고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구하는 것이 훨씬 더 지혜로운 일이요, 주님을 붙잡는 것이다. 39.말만 그럴듯하게 떠드는 신용 없는 사람이 아니라, 변해버린 상황이나 시간과 상관없이 항상 힘을 가지고 진실한 성도로 서야 할 것이다. 40.오늘 주님의 몸과 피를 취하면서 자신을 돌이켜 보고, 마음을 낮추면서 언제나 신실한 성도가 되기를 축복한다.

바라옵기는 변해버린 상황 속에 변명하고 비겁해지는 사람이 아니라, 항상 주님의 자비를 간구하고 스스로를 겸손하게 고백하는 신실한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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